가상화폐 실화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
1부>파멸의 미끼 문 우리 이웃들
3회>50대 농민 최승현(1)
서울신문 나우뉴스는 ‘사기공화국’ 대한민국의 신종 사건에 경종을 울리고자 르포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실제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나한류 작가가 6개월 가까이 취재·분석해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기를 피하는 바이블’이자 우리 정부가 사기 범죄에 더 엄하게 대응하도록 촉구하는 ‘여론 환기’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제보자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건 속 인물과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 등은 모두 가명 처리했습니다.
전라북도 완주군. 밤이 깊어질수록 적막은 한층 더 두터워졌다. 낡은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빛줄기 하나가 어둠을 베고 있었다. 그 빛의 주인은 50대 농업 스타트업 대표 최승현씨. 2년 전, 고통스럽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숨 막히는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누구보다 용기 있는 도전자였다. 낮에는 뙤약볕 아래서 억척스러운 농부로 땀 흘리며 푸른 작물을 키웠고, 밤에는 컴퓨터 스크린 앞에 앉아 복잡하고 역동적인 금융 시장의 흐름을 읽는 야심 찬 투자자로 변신했다.
그의 낮과 밤은 극과 극이었다. 흙냄새 가득한 낮의 삶이 현실의 뿌리라면, 디지털 세상의 밤은 희망을 향한 날개였다. 요즘 그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존재는 이성조 교수였다. 매일 밤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진행되는 그의 강의는 기존의 따분한 금융 지식과는 차원이 다른, 살아있는 통찰력과 경험을 선사했다. 승현은 ‘이런 분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하며 안타까워했다.
이 교수를 만난 지 한 달쯤 되었을까. 국내 주식 시장이 며칠째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승현의 계좌는 초반의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하고 원금을 겨우 지키고 있었다. 그때 이 교수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텔레그램을 통해 전해졌다.
회원들은 술렁였다.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던 채팅방에 이 교수가 결단이라도 내린 듯 하나의 단어를 던졌다.
“가. 상. 화. 폐.”
그는 곧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금융 천재들과 손잡고 가상화폐 시장을 크게 끌어올릴 것이라며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승현의 마음속에서 강한 거부감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2017년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전국이 비트코인 광풍에 휩쓸리던 그때, 친구처럼 따르던 지인 박상철이 있었다. 그는 ‘흙수저 탈출’을 외치며 수억 원의 사채까지 빌려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잠시 큰돈을 벌었던 상철은 두 달 만에 100%가 넘는 수익률을 자랑하며 승현과 후배들을 유흥주점으로 불러냈다.
“니들도 늦지 않았어. 나처럼 부자가 되고 싶으면 당장 가상화폐 거래소 가서 계좌부터 만들어!”
아가씨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의기양양하게 큰소리치던 그의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는 모두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승현은 그런 그가 내심 부러웠다.
하지만 그 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했고, 상철은 홀연히 동네에서 사라졌다. 소문이 무성했다. 사채업자들을 피해 외국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조폭들에게 붙잡혀 물고기 밥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상철의 비극적인 실종은 승현에게 비트코인이 ‘패가망신’의 상징으로 깊이 각인되게 만들었다.
그의 불편한 감정과는 달리, 채팅방의 다수 회원은 이 교수의 새로운 제안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마치 새로운 구원자를 만난 듯 환호했다. 이 교수는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앞으로 가상화폐와 주식 투자를 병행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부터 강의 내용은 오로지 가상화폐로만 채워졌다.
다음 날 저녁, 이 교수는 ‘아이카프’(IEKAF)라는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를 소개했다.
“제가 오늘 소개할 ‘IEKAF’는 미국 재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 라이선스를 받아 누구나 믿을 수 있는 해외 거래소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이 거래소를 통해 거액을 투자해 왔습니다.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에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회원 가입을 진행해주세요. 궁금한 점은 제 비서나 거래소 내 한국인 전담 매니저에게 문의하시면 됩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승현의 마음속에서는 낡은 기억과 새로운 유혹이 충돌하며 혼란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씁쓸한 과거의 교훈을 지켜야 할지, 아니면 이 교수의 제안을 받아 들일지 그의 고민이 깊어졌다.
(4회로 이어집니다.)
나한류 작가 wjw.digni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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