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야식당’은 도쿄 뒷골목의 작은 식당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위로를 얻는 따뜻한 이야기다.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 영화는 한 끼 식사가 단순한 배 채우기를 넘어 삶의 고단함을 어루만지는 소중한 행위임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면 문득 떠오르는 추억 속 가게들이 있다. 서울 신촌의 한 치킨집처럼 단순히 닭튀김을 파는 곳이 아니라 고생한 자신을 위로하고 마음을 털어놓으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들 말이다. 그곳은 한 끼 식사를 통해 정서적 유대감을 쌓고 위안을 얻던 특별한 장소였다.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오마카세’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를 휩쓴 오마카세 열풍은 이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외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맡기다’라는 뜻의 일본어에서 유래한 오마카세는 손님이 아닌 요리사가 그날의 재료와 요리를 결정해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손님은 요리사와 소통하며 특별하고 차별화된 미식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오마카세의 인기는 소비 문화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길어진 저성장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소확행’처럼 일상 속 작고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게 되었다. 자신을 위한 특별한 한 끼에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된 것이다. 오마카세는 단순히 맛있는 식사를 넘어,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과 콘텐츠로 기능해 소비자의 만족도를 더욱 높인다.
스시의 역사와 함께 발전한 오마카세
니기리즈시가 등장하기 전에는 생선을 소금과 쌀밥으로 숙성시켜 먹는 ‘나레즈시’가 있었고, 이후 식초를 활용한 ‘하야즈시’를 거쳐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했다. 19세기 일본에서 경제가 성장하자 빠르고 간편한 음식이 인기를 얻으면서 하나야 요헤이가 신선한 재료로 즉석에서 만드는 니기리즈시를 창안했다. 이는 스시를 ‘보존음식’에서 ‘즉석음식’으로 바꾸는 혁신을 가져왔고, 스시를 고급 요리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기에는 후지모토 시게조가 그날 가장 좋은 재료로 손님에게 맞춤형 스시를 제공하는 ‘오마카세’를 선보였다. 이는 단순한 메뉴 주문 방식을 넘어 요리사와 손님이 교감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고, 수많은 미식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나야 요헤이가 새로운 스시를 창조했다면, 후지모토 시게조는 스시를 즐기는 문화를 바꾸었다.
한 끼 식사가 주는 인간적 유대감
1990년대 유행하던 ‘욕쟁이 할머니 식당’이 떠오른다. 손님에게 험한 말을 해도 사람들이 굳이 그곳을 찾았던 이유는 겉은 투박해도 속은 따뜻한 할머니의 정이 그리워서였다. 오마카세의 인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메뉴판에 없어도 그날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들어주는 한 끼 식사는 어린 시절 할머니나 엄마가 해주시던 따뜻한 밥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근 오마카세와 노포가 결합된 ‘이모카세’가 유행하는 현상은 이러한 정성 담긴 한 끼 식사에 대한 갈증을 잘 보여준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과 노포, 오마카세, 이모카세는 모두 ‘심야식당’처럼 소외감에 지쳐가는 현대인들에게 인간적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다. 어쩌면 가족과 함께 식사할 시간조차 없는 현대인들이 그곳에서 찾는 것은, 단순히 좋은 재료로 만든 요리가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깊은 공감일지도 모른다.
한정구 칼럼니스트 deeppock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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