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배경 중 하나로 강력한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장이 거론됩니다. 그래픽 연산을 위해 중앙처리장치(CPU)보다 단순하고 작은 연산 유닛을 대량으로 탑재한 것이 수많은 행렬 연산을 통해 인공 신경망을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죠. 이제 GPU는 이름처럼 그래픽처리장치가 아니라 AI 연산 장치로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GPU가 태생부터 인간의 뇌를 모방한 프로세서는 아닙니다. AI 연산을 위한 유닛만 따로 모은 신경망처리장치(NPU)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모두 소프트웨어적 방법으로 신경망을 시뮬레이션하는 장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과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하드웨어적으로 뉴런을 모방한 프로세서를 개발해 왔습니다. 이를 뉴로모픽 컴퓨팅(neuromorphic computing)이라고 하는데, 19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캐버 미드 교수가 명명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 시기에는 뉴런을 모방한 복잡한 프로세서를 제조할 만한 기술이 없었습니다. 1990년대에 사용되던 프로세서의 트랜지스터 집적도는 300만개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는데, 뉴런만 1000억개에 달하는 인간의 뇌를 모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GPU 기반 인공신경망 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실생활 깊숙이 침투한 것과는 달리, 뉴로모픽 칩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인간의 뇌를 모방한 인공 신경망이 GPU 기반 기술보다 우수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뉴로모픽 칩이 여전히 의미있는 직접도를 구현하지 못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도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뉴로모픽 칩 연구를 주도하는 기관 가운데 하나인 미 국립 산디아 연구소는 지난해 인텔 로이히2 칩을 이용한 할라 포인트 (Hala Point) AI 컴퓨터를 도입했습니다. 로이히2 칩은 23억개의 트랜지스터에 100만 개의 뉴런을 집적한 칩입니다. 할라 포인트는 로이히2 칩 1152개를 모아 11억 5000만개의 전자 뉴런을 구현했습니다.
여기에 산디아 연구소는 최근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팀이 개발한 스핀네이커 (SpiNNaker·Spiking Neural Network Architecture) 뉴로모픽 칩 아키텍처의 최신 버전인 스핀네이커2를 도입해 첫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스핀네이커는 ARM 아키텍처 기반 뉴로모픽 칩입니다. 2018년에 공개한 뉴로모픽 컴퓨터는 100만개의 코어를 연결해 1억개의 뉴런을 흉내 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파생된 뉴로모픽 스타트업인 스핀클라우드(Spinncloud)는 스핀네이커보다 10배 빠른 뉴로모픽 컴퓨터를 목표로 스핀네이커2를 개발했습니다.
공개된 스핀네이커2 시스템은 여러 개의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탑재한 대형 메인보드가 24개 결합해 17만 5000개의 ARM 코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같은 저장장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 뇌와 마찬가지로 뉴로모픽 컴퓨터도 꺼지지 않고 계속 작동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산디아 연구소는 최종적으로 1억 5000만~1억 8000만개 뉴런을 구현할 계획입니다. 이것 역시 인간의 뇌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숫자지만, 점점 더 실제 생물의 뇌와 비슷한 수준으로 늘려 나갈 계획입니다.
아직 뉴로모픽 컴퓨팅은 걸음마 단계를 조금씩 벗어나려고 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뉴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뉴런과 시냅스에 가까운 구조를 지닌 만큼 정말 인간처럼 생각하고 자의식이나 감정을 지닐 수 있는 쪽은 오히려 뉴로모픽 컴퓨터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에게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의 가능성을 생각해 AI 기술을 통제할 방법이 뉴로모픽 컴퓨터에게도 필요할 것입니다.
고든 정 과학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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